[8 TALLET x Space] 이름,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다
Ørestad, 건축의 도시
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코펜하겐 남부의 신도시 ‘Ørestad(외레스타드)’를 놓쳐서는 안됩니다. 코펜하겐 중심지가 자리잡고 있는 셸렌 섬 남부에 이웃해 있는 아마섬은 예전에는 독일농부들이 집단 이주해 덴마크에 새 농경기술을 전해주던 곳이었습니다. 하지만 이 섬 최남단에 공항이 들어서고 이웃섬의 코펜하겐 중심지가 팽창하면서 2000년대의 아마섬은 큰 변화를 겪게 됩니다. 농경지가 대부분이던 이곳에 ‘신도시’들이 출현한 것이지요.
대부분 주거지로 개발된 이 신도시들 중 Ørestad의 전략은 단연 훌륭했습니다. 본래의 주거용 목적은 물론 건축학적 가치를 두루 충족시키는 독특하고 아름다운 건물들의 건설을 대거 유치한 것입니다.
8 TALLET
Ørestad를 빼곡히 채운 빌딩들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숫자 8자를 꼭 빼닮은 ‘8 TALLET’ 입니다.
경사진 면에 최대 10층까지 비스듬히 쌓아올린 이 건물은 그 독특한 건축양식으로 완공 이듬해인 2011년 World Architecture Festival과 그 다음 해 American Institute of Architects Honor Award 등에서 수상하기도 했습니다. 허핑턴포스트는 8 TALLET를 2001년부터 2010년까지 건축사 최고의 순간 중 하나로 꼽았으며 최근 건축학의 이슈를 충실히 반영한 8 TALLET 의 친환경지붕은 스칸디나비아 푸른지붕상도 거머쥐었습니다.
2010년 Ørestad 신도시에 세 번째로 완공된 8 TALLET는 2000년대에 덴마크에서 지어진 건물들 중 아마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건물일 것입니다.
숫자의 기억
8 TALLET가 숫자 8자 모양의 건물이라는 사실은 거의 모든 코펜하게너들이 알고 있지만 그들 중 8자 모양을 실제로 본 이들은 거의 없을 겁니다. 8 TALLET 속에 숨어있는 숫자 8자는 저 높은 상공에서 내려다 보아야만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죠.
하지만 왜일까요?
8 TALLET 라는 이름을 보고듣는 것만으로도 덴마크사람들은 숫자 8자를 꼭 닮은 그 건물의 모양을 머릿속에 아주 명확히 떠올리게 됩니다.
‘TALLET’라는 단어는 덴마크어로 number 혹은 figure를 의미합니다. 그러니까 8 TALLET라는 이름을 우리식으로 번역해 보면 ‘8자 모양’ 혹은 ‘숫자 8’ 정도일까요?
그 이름을 곱씹으며 그 거대한 빌딩 사이를 누비다 보면 사람들의 머릿속엔 절로 8자를 꼭 닮은 이 빌딩의 설계도가 떠오를 겁니다.
이름, 그 직설의 마법
이름도 모른채 그 황홀한 외관에 이끌려 온 사람들도 이 빌딩의 끝에 다다르면 결국 그 이름을 알게 됩니다. 빌딩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다 쓴 CAFE 8 TALLET 덕분이죠.
푸른지붕과 거대한 호수 사이에 자리잡은 카페에 앉아 햄버거와 맥주를 앞에 두고 유유자적 덴마크식 ‘hygge(휴식)’을 즐기노라면 화려한 미사여구 보다는 심플하고 합리적인 것을 추구하는 덴마크사람들의 생활양식이 더욱 와 닿습니다.
‘8자 모양’이라는 어찌보면 싱거울 만큼 직설적인 이름은 합리적인 덴마크 사람들의 사고 위에서 더욱 매력을 얻지요.
8 TALLET라는 이름이 덴마크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어려울 거라 판단했는지 빌딩 측에서는 ‘8 HOUSE’라는 국외용 이름을 따로 내놓았지만 ‘TALLET’라는 단어의 뜻을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8 TALLET이라는 이름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여주는 마법입니다.
By RONE